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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마음을 가진 전사 - 릭 조이너

by LeiLui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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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서 가장 커다란 비극들 가운데 하나는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주도적으로 쓰임 받았던 지도자들이 다음에 오게 될 하나님의 움직이심에서는 줄곧 반대자나 핍박자들이 되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추세는 실패해 왔다.


증가하는 권능과 권위를 주님께서 풀어넣으시려고 하는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고 또한 겸손하게 하기 위해 주님은 이러한 추세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이것은 여전히 커다른 비극이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다음 움직이심에 대한 방해물로 만들면서 자신들의 삶을 낭비해 왔다.


하나님의 어떤 움직이심에서 지도자들로 하여금 다음에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반대자가 되도록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우리는 반드시 그 요인들을 이해하고 또한 그런 것들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일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결단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들의 삶을 마치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했고 말했던 내용이다.


"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린도전서 10:12)


우리가 ' 어떤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고 우리로 하여금 추측이나 가정을 하게 하는 자만심이 결과적으로 그 일을 행하도록 하는 요인들 가운데 한가지이다. 실제적으로 이 문제는 교회역사보다 더 오래되었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났던 바로 그 두 형제들에게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한1서3:11~12)


성령의 새로운 움직이심들은 줄곧 교회에 더 많은 빛을 회복하는 결과들을 가져 왔다. 이 빛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교회역사에 암흑의 시기들(Dark Ages)을 거쳐 지나오면서 교회에 의해서 잃어버렸던 진리들이다.


우리가 그러한 반대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관계없이 그런 반대나 적대적인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질투심이다.


지금 현재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나 한때 그들이 소유해  왔던 빛에 충실해 온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자기보다 더 훌륭하거나 주님께서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를 사용하여 주님의 진리와 목적들에 더 차원 높은 회복을 가져오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매우 믿기 어려워한다.


궁극적으로 이 무시무시한 덫에 빠지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지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치유책은 세례 요한의 겸손과 성품을 구하는 것이다.  이 세례 요한은 진정한 영적 사역의 가장 위대한 모습들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삶에서 온전한 한 가지 목적은 예수님의 오심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 그분을 가르키는 것, 그래서 자신을 감소시키고 주님을 증가되게 하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의 기쁨은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이 자신이 나아갔던 것보다 더 높은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참된 사역의 토대들


참된 영적 지도자들은 반드시 " 영적인 내시(Spiritual eunuch) " 가 되어야 한다. 내시의 사명은 왕을 위해 신부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내시는 신부에 대한 욕심을 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그의 가장 커다란 기쁨은 왕이 기뻐하는 것에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명성을 쌓거나 우리를 섬기길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사역을 이용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드러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빌립보서 2:3~9)


이것이 바로 지도력 가운데 그분을 따르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정하신 모형이다. 권위와 지위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누가복음 14장 11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여기서 핵심이 되는 말은 " 누구든지 " 이다. 야고보가 여기에 덧붙여 말한다. "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야고보서 4:10)


베드로 역시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베드로전서5:6)


이상의 모든 성경구절들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고 주님의 일은 우리를 높이시는 것임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일을 하실 것이며 또한 주님은 그들 중 한 가지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하실 수 있다.


자기를 스스로 높여서 승격시키는 것(self-promotion)과 영토보존(territorial preservation: 영역보호)의 사악한 영들이 지금까지 많은 해악들을 교회에 끼쳐왔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승격시키고 승진시키는 영들과 영토보존의 영들과 많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더 높은 차원의 기름부으심과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으로 실격당하도록 하는 강력한 원인들을 제공해 왔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거나 조작함으로 우리가 얻은 영향력은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지위를 얻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stumbling block)이 될 것이다. 더 나이든 세대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움직이심에 대해 항상 걸림돌이나 마찬가지로 새로운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걸림돌이 되는 동일한 잘못을 범 할 수 있다.


" 우리는 새로운 세대이다 " 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바로 그런 태도가 하나님이 대적하시는 교만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들의 삶을 주님과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는데 신실하게 헌신해 온 사람들게 주어지는 겸손하게 하는 매(slap)이다.


세례 요한이 옛 질서의 한 부분이 되는 것으로 인해 예수님은 그를 웃음거리로 삼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은 그를 매우 귀하게 여기셨다. 예수님은 요한의 사역에다 자신을 복종시키기까지 하셨다.. 이 복종이 곧 주님께서 요한으로 하여금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요한을 인정해 주셨으며, 또한 그와 그의 사역을 존중해주셨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세에 근원에 대해 질문 받았을 때, 주님은 요한을 지적하시고는 심문자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에 대해 그들이 알고 있는지 어떤지를 되물어 보셨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요한은 한 가지 질서의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가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태초부터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예언했던 모른 사람들을 대표하기 위해서였다. 요한은 그들 모두가 말하였던 진실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분으로 예수님을 인정하는 그들의 대표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신임장으로서 자기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의 세례를 인정하셨다.


새로운 세대의 한 부분이 될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모든 의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자신들 앞에 왔던 사람들의 모든 사역에 복종해야 한다. 앞서 왔던 하나님의 운동들이 새로운 영적 질서의 출현과 동시에 쇠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의 지도자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더 멀리 나아가는 것에서 스스로 자신을 실격시키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우월감은 주님께서 시작하시는 새로운 일들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하는 옛 사람들만큼이나 정확히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을 대적할 수 있다.



학대박았던 사람들이 학대하는 자들이 되는 이유


학대를 경험했던 어린이들이 성장하고 나서 학대자들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난받았던 성도들이 성장해서 비난자들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동일하다. 학대받은 어린이들은 대게 자신의 부모들처럼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반항적으로 되며 그런 반항적인 태도는 그들을 은혜로 인도하지않게 되고, 오히려 쓴 뿌리(bitterness)에 영양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들과 꼭 닮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오직 스스로 낮춤과 용서만이 그 사이클을  영원히 파괴하게 될 것이다.


부모들의 죄악은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받을 때까지 자녀들의 죄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분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가 우리 부모들의 죄악을 떠 안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열조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했던 이유들 중의 하나다.

 

반드시 와야 할 엘리야


그 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처럼 핍박을 받게 될 영적인 세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다음 세대를 핍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운동에 속한 세대는 모든 것이 자신들만으로서 결말을 짓게 될 것이라고 가정해버리는  " 세대의 교만 (pride of generation)"  에 종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발견하고 자신을 학대했던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해 줄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나아갔던 것보다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음을 지각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인해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가능한 부드럽게 자신들의 삶을 다음 세대의 길을 닦는데 헌신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다음 세대가 일어남과 동시에 자신들이 쇠하여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이들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할 엘리야의 영을 소유한 세대가 될 것이다.


 릭 조이너의 ' 마지막 날들에 전개될 웅장한 영적 전쟁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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