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주님의 군사들이 함께 결집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교제하지 못하고 떠나갔던 많은 성도들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또 많은 교회들이 거대한 영적운동에 함께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초점, 그리고 목적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 운동이 하나로 뭉쳐질 것이며, 각 교단과 교파 간에도 더 많은 교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결집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보기에 좋지 않으셨던 첫번째 것이 바로 고립된 채로 홀로 외로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인류는 공동체에 속하도록 창조되었으며, 실제로 공동체 내에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삶에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몸은 최상의 공동체로 설계되었으며,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떤 피조물도 이에 비길 수 없으며, 주님의 몸된 교회는 최고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든 인류가 교회 안에서 교제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도 참된 평안과 충만함을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몸에 온전히 속하지 않은 채로는 머리되신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요한1서 4:20~21에 기록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보는 형제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좋든 싫든 간에, 여러분이 지역교회에 온전히 헌신할 때 겪게 되는 좌절과 고통이 없다면, 여러분 자신의 영적 성숙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게 될 교회가 이미 모든 문제를 극복한 성숙한 교회이기를 바라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각 개인은 자신의 영적 성숙과 성장에 필요한 중대한 과정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교회가 다닐만한 수준의 성숙한 교회가 될 때까지 밖에서 보고만 있다면, 정작 그 교회는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가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성숙을 위해서는 지역교회 생활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지역교회를 배제하고서도 지식을 얻고, 영적인 경험들을 누리며, 성령의 은사를 활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성숙과 권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장차 다가올 시대에는 생존 그 자체도 그리스도의 몸의 살아있는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고전 11장 23절~29절 말씀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잘못된 방법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찬의 의미를 단순한 의식으로 대체해버리는 오류에 동참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몸을 제대로 분변치 않고 포도주를 마시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몸을 잘 분변한다는 것은 몸된 교회와 교회의 한 부분인 우리 자신을 잘 분별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여러분 몸의 일부가 잘려나간다면, 몸인 고통 속에서 약해져 갈 것이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원리는 성도가 몸된 교회를 떠날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잠시 잠깐은 여러가지 압력이나 어려움이 없어져 자유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압력이나 어려움은 성도들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유용한 그릇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들입니다.
장차 오는 시대에는, 주님의 몸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서 떠나있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생명과 사망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뜻하신 곳 이외의 어떤 곳도 이 지구 상에서 우리에게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 가운데 그의 몸에 거하는 성도들은 넘치는 기쁨과 평안, 충만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시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살아있는 자에게 최고의 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는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누구도 본적이 없는 모습으로 자랄 것입니다. 1세기의 초대교회 조차도 마지막 추수의 때에 있을 교회의 씨앗에 불과합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교회는 온전한 모습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군사를 모으는 일은 군대를 발전시키기 위한 첫번째 단계입니다. 군사가 소집되면 훈련을 시키고, 장비를 갖춘 뒤, 전선에 배치해야 합니다. 올 해는 바로 군대를 소집하여 훈련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은 부르심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다. 나팔소리를 들으셨다면 부르심의 자리에 서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제자리에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요? ‘왕국의 열쇠’를 사용해보면 됩니다. 이 열쇠는 하늘나라의 문을 열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열쇠는 바로 먼저 모든 결정에서 주님의 나라를 최우선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자기 주변에 갈만한 교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 적합한 교회가 없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도들이 잘못된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잘못된 곳에 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주거지를 정할 때 취업기회나 지리적인 이점, 친척이나 친구들을 먼저 고려한 채,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어디인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였다면, 즉, 주님의 관점에서 옳은 것을 우선하여 결정하였다면,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실 것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계속 어그러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곳에서 훌륭한 직장을 얻고, 많은 돈을 벌면서 여러가지 경력도 쌓을 수 있지만, 그 마음은 공허해지고 삶에는 평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었다 할지라도, 지금 이순간 하늘의 열쇠를 사용하여 주님 나라의 문을 열고 그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있는 곳을 떠나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높은 연봉을 포기하는 일 일수도 있지만, 이런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주님의 일을 행하느냐 마느냐 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하고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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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군대 #2 - 릭 조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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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morningstarministries.org (200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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