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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적 성숙/'쉬움'이라고 불리는 적 - 릭 조이너

by LeiLui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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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적 성숙

 

겸손해지기 전에 탁월해진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지혜롭다면  우리는 지위를 구하기 전에 겸손을 구할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역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권위 안에서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은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우리는 오직 왕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정도만큼의 참된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진정한 영적 권위는 지위가 아니다. 그것은 은혜이다.  거짓된 영적 권위는 은혜 대신에

지위 위에 서게 된다.  가장 높으신  영적  권위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던지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같은 일을 하도록 명하셨다.

거짓 선지자들과 진정한 선지자들 사이에는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구별되는 요인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은사와 사람들을 자신들을 위해 이용한다. 진정한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은사를 사용하고 자신을 헌신한다. 자기추구, 자기를 높임, 그리고 자기보존은 진정한 사역에 가장 파괴적인 세력이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으심을 받았을지라도 사울 왕처럼 이러한 세력들이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면 우리는 마법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종교의 영은 항상 우리의 두려움과 교만을 더 크게 키울 것이지만, 참된 영적 성숙은 우리의 겸손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이러한 겸손하게 되는 과정이 바울 사도의 삶에서  놀랍게 나타나고 있다.

주후 56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원래의 사도들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 "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갈 2:6) 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이 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 자신도 가지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정도 지난 후에 기록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 (고전15:9) 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다.

AD 61년경에 기록된 에베소서에서 그는 자신을 보고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보다 더 작은 나" (엡 3:8)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대략  AD 65년경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은 "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딤후1:15)라고 자신을 부르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덧붙이고 있음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진정한 계시는 종교의 영을 무력케 하는 강력한 해독제이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자신의 초기 사역 몇 년 동안은 교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되지 못했음이 자신의 이러한 언급들로부터 분명해 진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이 두 가지로부터 자유케 되었다고 선언 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은혜 안에서 희망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겸손하게 될 것이다.

젊은 사도들은 자신들의 언행들로부터 많은 교만이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진정한 사도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열쇠는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에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계시, 우리의 위임 또는 우리의 성취들로 인해 과대하게 부풀어올라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은혜와 겸손 가운데 성장해가고 있는가?


'마지막 날들에 전개될 웅장한 영적 전쟁들' 中에서

 

'쉬움'이라고 불리는 적

 

우리의 삶이 어렵거나 혹은 괴로운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러한 삶은 대개 우리가 받은 높은 소명을 반영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대개'라고 말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악이 지배하는 것을 허락함으로 인하여 끊임없는 고통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많은 고통들은 그들이 올바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그들이 잘못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인간들의 삶을 볼 때 가장 높은 위치에 이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가장 좋고도 힘든 훈련을 통과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도 자신과 공동 상속인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은 훈련을 받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그러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사용하신다. 따라서 그러한 훈련을 편안하게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도전들을 받아 들여서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항상 쉽고 편안하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낮은 목적을 위해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들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들인 것처럼, 우리 주님은 이 시대의 시련과 전투들을 통해서 그의 아들과 딸들이 심저어 천사들까지도 흠모할만한 귀한 상속인들로 성장하도록 우리를 연마하고 계신다.

첫 아담의 신부는 완벽한 세상에서 살았지만 죄를 선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단은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여기시는 창조물인 인간들도 자유 속에서 악을 선택할 것이라고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불완전하고 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엄청난 지옥의 공격에 대항해서 주님께 순종하기로 선택하는 신부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들은 선이 악에 종국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지식과 함께 영원토록 주님과 그의 방법들을 자랑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은 주님의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그의 진리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과 함께 통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간주할 것이다.

우리가 고난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어질 때에 분명히 감사하고 즐거워 해야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이해해야한다. 우리는 진리를 수호하고 악의 올무에 갇힌 사람들에게 그리고 파멸로 치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휴식과 쉼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십자가 군병이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있는 영혼이 있는데 오래 동안 쉬기를 원하겠는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사로서 용을 죽이고, 가난한 자와 압제받는 자를 위해 싸우며, 왕 되신 하나님의 영토를 확립하기 위해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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